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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과 군인과의 가깝고도 먼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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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조회 712회 댓글 0건 작성일 20-11-1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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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글은 출판사에서 의뢰받아 각종 토픽을 다룬 밀리터리 잡상식 책의 일부입니다.
...의뢰받고 작성한 지 1.5년이 지났는데 사실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 요새 힘든가 보더군요.
안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쨌든 재미있게 쓴, 자극적인 첫 무료 부분입니다. 가급적 식사 시간과 멀찌감치 떨어뜨려 읽어주세요.





[자연에서 받아 다시 자연에 되돌려주기]
사실 모든 사람이 똥과 멀리 있고 싶어 하죠. 그게 뭐 좋다고 친근하게 굴겠어요. 이 글을 쓰려고 각종 자료를 찾아보는 내내 속이 별로였던 저도 역시 그렇고요. 그래서 똥 대신 제목처럼 순화시켜서 불렀더니 좀 편안해지더라고요.
해서 이번 글 내내 똥은 웬만하면 그대로 안 부르고, 자연의 선물로 부르겠습니다. 쾌변은 축복이요, 똥이 흙으로 돌아가서 식물을 살찌우는 순환계의 원리를 생각하면 그렇게 불러도 그리 이상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헷갈리시다고요? 입에 안 붙는다고요? 그래도 저 좀 살려주세요.
……군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의 선물은 필수적인 행동이지만 그렇게 달가운 일은 아닙니다. 어쩔 땐 귀찮고, 본질적으로는 더러운 행위이죠. 무방비가 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바지를 벗고 앉는 만큼 등 뒤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장비나 복장이 해제되면서 뭔가 인간이라는 면이 확실히 드러나는 동시에 좀 딱하죠. 1차, 2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들의 증언을 보면 저격수 포함 국적 구분 없이 자연의 선물을 자연에게 돌려주는 사람은 가급적 쏘지 않는 불문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군인들에게는 원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의 선물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용감하든, 아니든 정예병사든, 풋내기든 참전해서 위기가 닥치면 체질에 따라 구분 없이 공평하게 찾아오지만 경험한 군인은 웬만하면 숨기는 비밀의 순간이 있다고 해요. 극한 상황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크게 논의된 적 없는 이 비밀은 바로…….


[굳이 말할 필요는 없는, 하지만 자연스러운]
연구에 따르면 생사가 오가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인간의 신체는 몇 가지 공통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우선 심장이 빨리 뛰면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사지의 온도가 살짝 내려갑니다. 주먹질이나 격한 행동을 대비하기 위한 신체의 본능적인 반응이죠. 그러고는 웬만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대소변을 보게 됩니다.
부상자를 다뤄본 적이 있는 응급 치료 요원, 경찰관, 혹은 소방관들은 많은 피해자들이 불쾌한 경험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자신들도 위기 상황에 빠지면 똑같이 반응하고요.
해당 경험 중 가장 오래된 문헌은 제가 알기로 일본 전국 시대 무장이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이어 일본의 통치자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경험담입니다. 이에야스는 어린데다 동맹도 없었던 군소 군벌이었던 시절, 전투에 패해 도망가면서 말등 위에서 자연의 선물을 내보낸 적이 있습니다. 옆에서 이를 본 종자는 비웃었고 이에야스는 손가락까지 찍어가며 이것은 자연의 선물이 아니고 된장이라고 우겼습니다. 그는 이러한 일화에 교훈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무사히 귀환한 후 그림과 석상으로 제작해 일화를 제작해 떳떳이 그날의 망신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현대에는 그림 대신 통계로 남아 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미군 전체의 전과에 관한 공식 연구서 <아메리칸 솔저>에 따르면 참전 용사의 4분의 1이 바지에 오줌을, 8분의 1은 똥을 쌌다고 하네요. 최전선에서 복무한 병력만 대상으로 삼고 그중에서 격렬한 전투를 경험하지 않은 병력을 제외하면 약 50퍼센트는 바지에 오줌을 쌌고, 약 25퍼센트는 똥을 쌌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다들 아시죠? 신체나 사생활과 관련된 설문은 제대로 된 통계를 내기 힘들다는 점이요. 과장해서 자신의 경험을 부풀려 증언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는 일반적인 인식과 주변의 눈을 의식해서 축소시키거나 없애버리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최전선에서 복무한 병력의 50퍼센트가 본인이 원하지 않은 자연의 선물을 보았단 통계는 솔직하게 사실을 인정한 군인들의 증언만 반영된 것입니다. 따라서 실제 수치는 이보다 더 높을 가능성이 큽니다. 현실적으로 성인인 군인들이 ‘바지에 똥을 싼’ 경험이 주는 굴욕감 때문에 사실을 기꺼이 인정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그냥 호사가의 헛소문이나 군인을 험담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란 의심을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긴 그렇죠. 전투 장면에서 주인공이 바지에 똥을 싸는 전쟁 영화는 없죠. 노병이 된 참전용사가 대놓고 그런 경험을 밝히는 경우도 없고요. 귀가해서 전쟁 회고담을 말해 주는 자리에서 손자나 손녀에게 쉽게 말할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하지만 공식적인 통계가 분명히 있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어요. 따라서 자존심 상하고 굴욕적인 경험에 속하는 이러한 얘기는 좀 더 이해받기 쉬운 고통이나 자랑하기 쉬운 무용담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고 봐야 합니다. 이 경우 <전투의 심리학>의 저자 데이브 그로스먼은 20년 뒤에 손자가 전투에 나섰다가 속옷에 똥을 쌌을 때 일어난다고 지적합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영화 속 주인공이나 참전 용사인 할아버지에겐 없던 일이 일어난 셈이므로,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며 자책할 수밖에 없습니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장 북한의 도발이나 급변 사태, 심하면 전쟁까지 일어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정훈 시간을 생각해 봅시다. 저런 일을 터놓고 알려줄 분위기가 아니에요.
<전투의 심리학> 공저자 로런 크리스텐슨은 법집행 쪽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입니다. 그는 격렬한 총격전에서 자신을 방어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경찰관에게 스트레스가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글을 주요 경찰 잡지에 기고한 적이 있었습니다. 원고를 채택하기로 결정한 편집자는 전체적인 내용에는 만족했지만 경찰관이 임무 중에 옷에 똥을 쌀 가능성을 언급한 부분은 삭제했습니다. 이와 관련된 사회 통념은 여러 세대에 걸쳐 지속되었습니다. 해당 현상은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삼은 레마르크의 반전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서 주요 인물은 물론, 주변인 전원이 경험해 보았다고 거론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다수 참전 용사에게는 감추고 싶은 어두운 비밀입니다. 이런 사실은 놀랄 만큼 은밀하게 숨겨져 있고, 거의 문화적 금기에 가깝습니다.
2001년 9월 11일 테러당시 현장에 있었거나 투입된 미국의 법집행관들의 일화입니다. 화자는 현장 근처에서 첫 번째 건물이 무너질 때 있다가 일단 도망갔습니다. 검은 먼지가 그를 감쌌고 하늘을 시커멓게 뒤덮었습니다. 우리가 기록영상에서 봤던 그 먼지 구름입니다. 두 번째 건물까지 무너지면서 갑작스러운 충격과 돌풍, 돌가루, 먼지가루가 더 심해졌습니다. 의식이 희미해져 가면서 자신이 죽어간다고 생각하던 경험자는 구름이 걷히자 다시 뒤돌아 건물 쪽으로 가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몇 시간 뒤 그는 체육관에 있는 샤워장을 안내받았습니다. 그 안에서 그는 자신 빼고 모든 사람이 옷에 자연의 선물을 발산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화자가 유일하게 멀쩡했던 이유도 분명했습니다. 사건이 터지기 전 이미 화장실을 제대로 다녀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경험한 생존자는 용기가 부족했던 탓일까요? 당연히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면 이것이 매우 정상적인 생리 현상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좋습니다. 정신건강에도 훨씬 이롭고요.
이제는 전장에 피, 땀 외에 또 다른 것들이 흐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무기가 된 경우]
베트남전에서 미군과 싸우던 베트남군은 주요 지점에 부비트랩을 설치했습니다. 한 방에 사람을 죽이는 물건도 있었지만 설치 시간이나 제작 난이도 때문에 바닥에 꼬챙이를 설치하고 위에는 대충 덮어 발등을 뚫는 등 간단한 부비트랩도 많이 사용했습니다. 이때 베트남 병사들은 물소나 인간의 것을 꼬챙이에 발랐는데 찔린 미군은 그 안에 들어 있는 세균 때문에 이중으로 고생했습니다.
오줌이 흑색화약을 만드는 재료 중 하나로 쓰인 사실 역시 유명하죠? 세 가지 재료 중 하나인 초석을 만들 때는 부뚜막과 마루의 흙, 오줌 등을 긁어모은 뒤 말려 체로 치는 방법으로 모아 사용했습니다.


[약으로 쓴 경우]
2차 세계 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사막에서 싸우던 독일군은 이질에 걸려 자주 설사에 시달렸습니다. 이질은 환자 또는 보균자가 배출한 자연의 선물을 통해 나온 시겔라 균을 입으로 소량으로도 삼켰을 때 감염됩니다. 당시 작전 지역 내 수원은 한정되었는데, 관리자는 당연히 없었습니다. 물 근처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오갔고, 동물들도 따라다녔죠. 제한이나 관리가 없으니 사람과 동물의 배설이 자유롭게 이뤄졌습니다. 이렇게 오염된 수원의 물 때문에 독일군은 열이 났고, 배가 아프다가 설사를 쏟았습니다. 영국군을 무너뜨리고 중동의 석유를 차지해야 하는 독일군에게는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환자들을 돕기 위해 본국에서 다양한 유형의 과학자와 의사 그룹이 도착했습니다. 보유한 항생제로는 이질을 고칠 수 없었기에 그들은 같은 상황인 현지인들은 대부분 팔팔하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관찰이 필요했죠.
관찰 결과 의료진은 현지인 환자 한 명이 낙타를 쫓아다니다 낙타가 갓 싼 똥을 먹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효과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낙타 똥을 먹은 사람들은 하루만에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아랍인들은 낙타가 특별한 약초나 식물을 먹은 게 아니고 보통의 낙타와 보통의 배설물임을 증언했습니다. 자신들이 몇 세대 동안 경험적으로 증명했으며, 신선할 때 빨리 먹어야 한다는 충고를 잊지 않았습니다.
나치 과학자들은 낙타 똥에서 바실루스 수브틸리스(Bacillus subtilis, 고초균)를 발견했습니다. 바실루스 수브틸리스는 다른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를 먹어치우는 성질이 있어서 항생 물질로 사용이 가능했습니다. 과학자들은 현재는 프로바이오틱스로 널리 활용 중인 이 박테리아를 활용해서 군인들을 살리기 위해 국통에다, 따뜻하게 데운 물에다 낙타…… 이하 생략하겠습니다.
훗날 그들은 이를 건조시키고 캡슐 형태로 넣는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빨리 개발했음 좋았을 것 같아요. 실제로 마신 독일군들은 참 힘들었겠어요.


[저격수는 자연스럽게]
월남전 당시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1일 이상 한 자리에 대기하는 저격수가 흔했다고 합니다. 특히 암살 임무를 맡은 저격수는 적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잠도 자기 힘들었습니다. 잠도 자기 힘든 판에 따로 시간을 내거나 자세를 크게 바꿔 자연의 선물을 내놓기는 쉽지 않았겠죠.
베트남전 당시 93명 저격 공식기록을 가진 미 해병대 저격수 카를로스 해스콕은 3박 4일에 걸쳐 엄중한 경계 속에 있는 월맹군 작전기지에 침투해 장군을 암살한 비 공식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1.5킬로미터를 포복전진으로 전진한 그는 목표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적 사령부에서 나오는 장군을 보고 저격했습니다. 당시 헤스콕은 별다른 식사 없이 3일 동안 작은 수통의 물만을 마셨으며 대소변은 모두 바지 속에 그대로 놓았다고 회고했습니다.


[자연의 선물은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까?]
성인의 1일 배뇨량은 2000cc, 배설량은 200그램 정도입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이오지마 상륙작전을 준비하던 미군은 섬에 UDT 특수부대를 투입시켜 일본군의 화장실을 염탐합니다. UDT 대원은 깊이에 따른 양을 측정하고 이를 보고해서 미군 수뇌부는 수비군의 숫자를 얼추 1만 명 규모로 판단합니다. 하지만 섬에 주둔한 해군 육전대 2만 명은 매우 적게 먹는 습관이 일상화된 사람들이었다고 해요. 미군의 양으로 일본군을 계산했던 거죠.
하여간 자연의 선물은 한두 명일 땐 괜찮겠지만 사람이 많이 모이면 당연히 양도 많아집니다. 자연의 선물에는 개인이 가진 세균이 들어 있으며, 노출되었을 경우 파리 같은 해충의 번식에 이로워집니다. 공기와 물이 오염되면 전염병이 생기겠죠. 따라서 군대 같은 경우에는 집단 교차 감염을 막기 위해 화장실을 만들 때 꼼꼼한 규정이 있습니다. 1차 대전 당시 각군은 일정주기마다 소독제와 석회를 뿌리는 집단화장실을 운용했습니다. 참호전 상황에서 화장실을 가기 힘들 경우에는 개개인마다 다른 크기와 모양의 자작 요강을 썼습니다. 물론 제품화된 요강도 흔했습니다. 군납품을 생산하면 돈이 좀 쏠쏠하잖아요.
2차 대전 미군의 경우는 아예 보급으로 화장실용 양동이와 소독제를 지급합니다. 5갤런들이 표준 철제 기름통을 사용하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상부를 절단해서 쓰다가 차면 그대로 버릴 수 있었고, 버리기 직전까지 토양을 오염시키지도 않으니 인기 만점이었죠. 이러한 전통은 베트남전까지 이어집니다.
개인의 경우 미군 규범은 1인당 깊이, 너비 모두 60센티미터를 규정해서 팝니다. 일주일 사용 후 옆에 흙더미를 무너뜨리고 그 전에 소독제가 있으면 사용하면 됩니다. 경험해 본 분들도 있겠지만 2리터짜리 생수병과 큰 비닐봉지는 자연의 선물 처리 방법에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물론 실제 자연은 노하겠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편리한데.
현재 미군은 화학처리가 가능한 화장실을 배치하는 추세입니다. 주로 전투 외 업무로 민간 수주를 받은 켈로그 브라운 앤드 루트사가 이러한 화장실 운반, 보급, 처리 업무를 도맡습니다. 여름엔 섭씨 52도까지 오르는 사막 기후의 화장실은 자연의 선물이 변질되는 데 최선의 조건을 갖춘 곳입니다. 또한 각자 식성과 음식이 다른 다국적군이 자연에 돌려보낸 자연의 선물은 성분과 악취, 변질 조건 또한 다릅니다. 켈로그 브라운 앤드 루트 사는 각종 실험을 거쳐 데이터를 수집해 악취를 제거하고 위생을 가져오는 최선의 화학제를 조합해 사용한다고 선전했습니다. 약품은 1회용 기저귀나 생리대에 쓰는 폴리아크릴산나트륨 같은 물질이 주성분입니다. 등산이나 낚시, 캠핑 가신 분들은 잘 아시다시피 이런 물건들은 푸른색을 띄며 자연의 선물을 담으면 물기가 사라지면서 고체화되고 살균과 방부 처리가 동시에 진행됩니다.
파병군인들에게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라는 평과 최악이라는 평이 반반으로 나뉘던데 저는 안 써봐서 사실 모르겠어요.


[미래의 화장실]
현재 우리 군은 필수 영양분을 피부를 통해 전달하는 최첨단 패치형 전투식량을 2025년까지 개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파스처럼 붙이는 이 패치로 병사들은 최대 나흘 간 음식물을 먹지 않고 작전할 수 있다고 하네요. 이러한 경피투과방식 영양전달시스템은 음식이 차지하는 부피와 무게를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효과와 함께 영양분이 이미 분자 형태로 분해된 상태이므로 자연의 선물을 덜 내보내는 효과가 있습니다. 개발에 성공하면 다행이에요. 북한군이 1, 2차 세계대전처럼 암묵적으로 봐주는 상대도 아니고 아무래도 적진에서 민생고를 해결하기란 어려운 일이잖아요. 음식이 주는 즐거움이 없어져 사기가 떨어진다는 우려도 있는데 저는 안전을 선택한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살고 봐야죠.

그러게요? 신기하네요. ㅋㅋ

음... 원주민들이 치료한다고 똥 먹은건 대체 어떻게 시작된 걸까 궁금하네요.

1.

늙었다는 것은 감정을 숨기는 걸 더 잘하게 된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귀가 잘 안 들린다. 불편하지는 않다. 어차피 듣고 싶은 것보단 듣고 싶지 않는 소리가 더 많은 나이다.

하지만 그렇게 듣고 싶지 않은 소리가 너무 잘 들릴 때가 있다.

"아니 아빠는 화도 안 나?"

누구지? 아마도 손자 목소리인 듯 하다. 이름이... 뭐였더라.

"그런 걸로 화 낼 필요 없다."

아, 이 목소리는 안다. 막내다.

나이 먹어서 아들이 아들이랑 싸우고 있는 꼴을 보아하니 귀가 안 들리는 척 하는 게 편하다.

아내가 죽은 뒤로는 내가 정말 안 들리는 건지, 안 들리는 척 하는 건지 맞추는 사람이 없다.

TV를 켠다.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 들린다. 아니 너무 익숙한 단어들이 들린다.

누군가가 사과를 한다고 한다.

사과를 했다고 한다.

뭣하러 사과를 하나 어차피 사과할 이유도 없구만.


2.

아들이 뭐라뭐라 소리를 지르더니 나갔다.

해 주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 걸 어쩌리.

아직 아들은 모른다. 그게 화 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나는 병신새끼라는 욕을 듣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싫었다.

누군가 그렇게 말하면 나는 죽을 때까지 싸웠다. 미친 척 하고 싸웠다.

엄마-이제 죽어서 없지만-는 그렇게 싸우고 온 아들을 대신해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내게 뭐라고 하진 않으셨다. 그 때가 몇 살이였더라.


아버지-내가 기억하기로는-,

아버지는 옷을 혼자 입지도 못했고,
신발도 혼자서 신을 수 없었고,
밥도 혼자서 해 드실 수가 없었다.

그 당시에 나는 몰랐다. 큰 형은 알고 있었다. 누나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집에서 그걸 모르는 사람은 딱 두 명이였다.

그 사실을 40대가 되서야 알았다. 아니 짐작은 하고 있었다.
어느정도 머리가 커진 후에는 정확한 사실은 아니여도 아버지가 부끄럽다는 건 알았다.

나는 입대하던 날 아침 일찍 대문을 나섰다.

부모님 보고는 절대 따라오지 말라고 얘기한 뒤에 기차에 올랐다.

부끄러운 아버지 따위는 필요없다고 생각하며 연병장을 뒤돌아본 순간, 거기에 아부지가 있었다.

자식이 아비를 창피해 하니, 아비는 가장 끝가에서 나를 찾고 있었다.

나는 아부지를 봤다. 아부지는 나를 봤을까.

그렇게 아버지는 명절에만 뵙는 사람이 되었다.



3.

때로는 진실을 아는 게 딱히 좋은 것만은 아니다.

왜 어렸을 적에 할머니가 손톱깎이 근처에도 못 가게 했는지, 왜 할아버지는 손가락이 없는지.

그 이유를 물어본 적도 없었다.

아버지가 그 진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던 순간에, 나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빠는 술에 취해 있었다. 울고 있었다.

아빠가 연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술에 취한 아빠는 한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고 또 했다.

입대하는 이야기는 열번도 넘게 들은 것 같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야 아빠는 할아버지가 한센병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걸 자식들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았다. 절대로. 자식들에게는 그 굴레를 씌우고 싶지 않았기에.

본인이 숨을 다할 때까지도....



아 생각해보니 그 전에는 그렇게 고상한 단어로 부르지도 않았다.

문둥이라고 불렀지.

아 그러고보면 세상이 나아졌네. 최소한 문둥이라고는 안 했으니.




4.

"아부지, 뭐하러 나오셨우?"

아부지가 편의점엘 다 오고.

"담배 한 갑만 줘바라"

금연한 지가 10년이 다 되가시는 분이 웬 담배를.

"아부지, 여기는 담배 못 펴. 흡연장 가야지"



5.

아니 이놈의 아파트는 담배도 맘대로 못 피게 하는구만.

"야 넌 왜 여기 있냐. 제발 담배 좀 끊어라"

"그러는 아빠는 왜 왔는데?"

"할아버지가 피신다 그래서 왔다. 왜?"

"할아버지 담배 끊으신 거 아니에요?"

"몰라, 한 대 피고 싶으신가보지."

거 참 불이나 붙일 것이지 말만 많네.

"아부지 불"



6.

삼 부자가 담배를 핀다.

그렇게 말 없이 들어간다.



7.

똑같은 일을 보고도 셋의 반응이 모두 다른 것은

그러한 상처는 그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굴레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포기했다.

그러한 모욕은 그에게는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그런 말에 분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악담은 그에게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화를 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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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일 겁니다. 아마도. 처음부터 끝까지 숨도 안 쉬고 읽어내려갔습니다. 저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정부나 언론은 청혈증에 대한 미스터리들이 점점 풀리고 있으며 곧 정복될 것이라고 떠들어댔다. 자고 일어나면 청혈증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데 결정적인 새로운 단서를 잡았다는 뉴스가 나왔다. 처음엔 다들 공포에 떨었지만, 3년이나 지나면서 점점 무감각해져 갔다. 그 병에 걸렸다고 특별히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도 아니었기에, 결국엔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다. 보건 경찰의 검은 마스크가 나타나면 그저 오늘도 누군가 끌려가는구나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저녁 회식에서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조사 중에 보건 경찰이 귀띔해 준 바에 의하면, 혜경이 쫓기는 이유가 단순한 청혈증 환자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지하단체의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청혈자들의 지하단체인 그것은 이미 반사회적 단체로 규정되어 있으며 조직원 전원이 국제적으로 수배 상태라고 한다. 혜경은 청혈증과 관계된 주요 위험인물이라는 것이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아는 혜경은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공부밖에 모르고 연구밖에 모르고 자기밖에 모르던 사람이었다. 무엇이 그녀를 변화시켰을지 모르지만 내가 아는 그녀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보건 경찰 앞에서 웃음을 참느라 꽤 고생했다. 그들이 헛짚은 게 확실했다. 지하단체라니, 내가 아는 한, 그녀는 그런 건 개가 물어가게 내버려 둘 위인이었다. 나한테 알고 있는 걸 다 불라고 했지만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며칠 동안 실랑이한 끝에 변호사가 오고 나서야 간신히 풀려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물 한잔 들이키고서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 지급정지 되기 전에 현금부터 찾아둬야 한다. 내 차로 움직이면 바로 잡힐 텐데, 다른 차를 구할 방법이 없을까. 렌터카나 공유 차량 같은 건 쉽게 꼬리를 밟힐 거다. 오늘 내일은 어찌 되겠지. 그들이 그렇게 빠릿빠릿하게 움직일 리 없으니까. 빨라야 다음 주나 돼야 차량 수배가 떨어질 거야. 일주일 동안은 타고 다니고, 다음은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자.

  은연중에 그녀를 믿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모순되게도 일주일이 잠복기라는 말도 믿었던 거 같다. 하지만 그녀도, 세상도 틀렸다. 나는 일주일이 한참 지난 지금에야 그 저주에 걸리고 말았다. 거울 속 내 모습은 가관, 그 자체였다. 점차 퍼렇게 변해가는 얼굴을 보니 지난여름 냉장고에 넣어둔 식빵에 핀 푸른색 곰팡이들이 생각났다. 내 피에도 내 얼굴에도 내 입술에도 곰팡이가 핀 것 같다. 내 인생에 곰팡이가 핀 건 확실했다. 이제 세상은 나를 도려내 버리려 하겠지. 음식물 쓰레기처럼 냄새나는 것들과 같이 버릴 거야. 국내 굴지의 온라인 쇼핑몰 쇼팡의 마케팅 본부 기획팀장에서 푸른곰팡이 잔뜩 낀 음식물 쓰레기 신세가 되는데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할로윈 분장 같은 끔찍한 얼굴 그대로 다닐 순 없는 노릇이었다. 혜경처럼 두꺼운 화장을 할 수도 없었기에 대신 커다란 마스크를 썼다. 신고는 이미 들어갔을 테니 당장이라도 보건 경찰이 들이닥쳐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옷을 갈아입고 은행으로 가 뭉칫돈을 찾아 가방에 구겨 넣었다. 이제 돈을 쓸 일이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당장 찾을 수 있는 현금은 다 찾았다.

     

  어디로 가지.

     

  차에 올랐지만, 내비게이션에 찍을 곳이 없었다. 누가 이런 나를 반겨 줄까. 지방에 딱히 아는 친척도 없었다. 아니, 있다손 치더라도 이런 상태의 나한테 어서 와라 해줄 리 만무했다. 부모님은 돌아 가신지는 이미 오래고, 하나 있는 동생네는 미국에 있다. 갈 곳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가 문득 안면도에서 펜션을 하는 기영이 떠올랐다.

  기영과는 경영대학원 입학식에서 처음 만났다. 본교 출신이 대부분인 석사과정생 중에 기영은 유일한 타 대학 출신이었다. 첫 학기 대표를 맡았던 나는 낯설어하는 기영을 많이 챙겨주었고, 기영은 그런 배려를 고마워했다. 그럭저럭 잘 다니던 기영은 논문 학기만 남기고, 학교를 그만뒀다. 안면도에서 펜션을 하던 아버지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기영과 5년 전에 우연히 연락이 닿았다. 인터넷으로 마케팅 본부 단합대회 장소를 물색하던 중에 기영의 펜션을 보게 된 것이다. 그 후로 가끔 휴가철이나 한가할 때 신세를 지곤 했다.

  펜션으로 가던 중, 행담도 휴게소에서 잠깐 쉬면서 차가운 커피와 빵 쪼가리로 미처 하지 못한 점심을 대신했다. 손을 닦으려 글로브박스에서 물티슈를 찾다가 못 보던 무언가를 발견했다. 스마트 폰이었다. 그것의 주인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혜경이 놔두고 간 것이 분명하다. 켜보니 텔레그램 외 다른 앱은 깔려있지도 않았다. 텔레그램 주소록에 등록된 사람은 길 잃은 고래한 명뿐이었다. 또 다른 게 있나 하고 살펴보니 녹음 파일이 하나 있었다. 파일의 생성 일자는 혜경이 오피스텔을 찾아온 그 날이었다. 스마트 폰을 차에 연결해 들어 봤다.


  정오씨도 알다시피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청혈증에 대한 연구를 했었잖아. 그래서 알고 싶진 않았지만 많은 걸 알게 되어 버렸어. 예를 들면 지금 청혈증에 걸린 사람들에 대한 처우라든가, 정부의 정책 같은 거 말이야.”


  그날, 내가 잠든 동안 녹음했나 보다. 혜경은 청혈증이 얼마나 심각하게 퍼졌는지 그렇지만 왜 그게 위험하지 않은지 설명했다. 혜경은 지금 전체 인구의 5% 정도 되는 사람들이 청혈증에 걸렸다는, 그러니까 전 세계적으로 2억 남짓 되는 사람들의 피가 파랗게 변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라별로 별도로 격리 수용되어 있는데, 그 수용소의 상황은 상당히 열악하다고 한다.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는 처지라는 거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런 소식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청혈증에 대한 보도는 철저히 통제되고 있었다. 3년 전 처음 발견됐을 때는 그래도 제법 보도가 있었는데 2년쯤 전부터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다. 다만 가끔 정부의 발표를 되뇌는 수준의 보도만 있을 뿐이었다.

  정부의 발표는 요근래 점차 병을 통제해 가는 중이고 감염자는 줄고 있으며 치료제는 곧 개발될 거라는 희망적인 이야기가 전부였다. 혜경은 그것들이 말짱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청혈증은 병이 아니라는 거다. 피가 파랗게 되는 것 외에 그 어떤 증상이나 영향이 없다고 한다. 누군가 그 증상 때문에 죽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오가 기억하는 바로는, 청혈증 출현 초기에 아이의 피를 먹으면 청혈증이 낫는다는 괴소문이 퍼져 아이 몇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피 한 방울 남지 않은 아이들의 시체가 발견되고 사람들은 분노와 공포에 떨었다.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고서야 그 추악한 일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피를 먹은 사람들은 그래도 죽진 않았지만, 그 피를 수혈받았던 사람들은 어처구니없이 죽고 말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피가 파랗게 됐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했다. 어떻게 해서든 다시 빨간 피로 돌아가려 했다. 빨간 피를 자신의 몸에 넣어 다시 피를 빨갛게 만들고 싶었던 그들은 오히려 더 차가워진 피를 가진 괴물이 되고 말았다. 그 사건 때문에 피가 파래진 사람들을 향한 시선에 공포와 혐오가 스며들게 되었다.

  청혈증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병의 증상 악화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만든 상황 때문에 죽어 나갔다. 혜경은 어떤 나라에서는 군대가 피가 파란 사람들을 모두 몰살시키는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들을 격리시켜 관리할 능력이 없었던 아시아의 어느 나라에선 수만 명에 달하는 그 사람들을 죽이고 파묻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용없는 것이, 다음 날 다시 피가 파란 사람들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학살 명령을 내렸던 지도자의 피가 변했다는 것이다.


  “피가 파란 사람들이 처음 출현한 1년 동안 세계 곳곳은 그야말로 피의 색깔과는 무관하게 미쳐갔어. 청혈증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는 실험실에서 실험 동물에게 그것이 재연되어야 했어. 그런데 무슨 방법을 써도 실험동물의 피는 전혀 파랗게 변하지 않는 거야. 실험체를 확보하지 못한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청혈증이 걸린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어. 청혈증을 치료하기 위한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서 그들을 희생양 삼은 거야. 이건 전 세계 모든 연구기관이 마찬가지였어. 피가 빨간 사람들로 이루어진 연구원들은 점차 그 실험체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기 시작했어. 그들에게 연민이나 동정을 가지면 연구는 끝장이었거든. 정부와 회사는 끊임없이 실험체를 공급해줬고, 덕분에 많은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었어. 당연히 이런 사실은 철저히 통제됐지. 내가 집을 나와야 했던 것도 연구소에서 제공한 기숙사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야.”


  혜경은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 알아낸 중요한 사실을 말해주었다. 지구상의 전체 인간 중에 청혈증 발현 가능 유전자를 가진 인구는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그 발현이 지금 일어난 이유는 그것이 어떤 외부 자극에 의해 스위치가 켜졌기 때문인데, 그 외부 자극이 무엇인지 아직 추측만 무성할 뿐 명확히 밝혀지진 않았다.


  “이 단체에서는 내가 그 유전자의 발현을 앞당길 방법을 찾아내길 원해. 이들이 원하는 건 트리플 B, Boom of Blue Blood, 청혈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을 말하는 거야. 그걸 통해 한꺼번에 인구의 절반이 파란 피로 바꿀 수 있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거지. 인류 전체의 절반가량의 피가 파랗게 변하는 거야. 그렇게 되면 그들은 더 이상 괴물이 아닌 거지. 절반을 격리할 수는 없잖아. 어쩌면 이건 인간 해방의 신호탄일지도 몰라. 어차피 인류의 절반 정도가 청혈자가 될 운명이라면 전 세계의 모든 파란 피들이 봉기해서 파란 피의 인류를 다시 세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내가 그 방법을 찾아보려고 해.

  사실 정오씨 유전자도 검사해 봤어. 내가 가져온 물건 속에서 정오씨 머리카락 정도는 쉽게 구할 수 있었거든. 그리고 정오씨에게 발현 유전자가 있다는 걸 확인했어. 그래서 이 메시지를 남겨둔 거야. 확실한 건 청혈자들은 이제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할 거라는 거야. 피가 빨간 이들은 우리를 인간으로 보지 않을 거야.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아마 그 날이 내일이거나, 다음 달이거나, 내년이지는 않을 거야. 많은 사람이 죽고, 죽고, 또 죽은 후에야 간신히 알아차리겠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자신들이 악마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걸 말이야.

  유전자판별법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상부에 보고했어. 정부에서도 아마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 하지만 누구도 이 유전자검사법을 적용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어. 인류의 반이라고, . 자신의 유전자가 파란 피로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어? 이 방법은 절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 거야. 파란 피의 인간이 세상에서 모두 없어진다 하더라도 말이야.”

오오, 닌겐은 얼마나 시각적 정보에 경도되는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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