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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되는데 걸리는 시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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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조회 589회 댓글 0건 작성일 20-11-26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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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나 언론은 청혈증에 대한 미스터리들이 점점 풀리고 있으며 곧 정복될 것이라고 떠들어댔다. 자고 일어나면 청혈증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데 결정적인 새로운 단서를 잡았다는 뉴스가 나왔다. 처음엔 다들 공포에 떨었지만, 3년이나 지나면서 점점 무감각해져 갔다. 그 병에 걸렸다고 특별히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도 아니었기에, 결국엔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다. 보건 경찰의 검은 마스크가 나타나면 그저 오늘도 누군가 끌려가는구나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저녁 회식에서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조사 중에 보건 경찰이 귀띔해 준 바에 의하면, 혜경이 쫓기는 이유가 단순한 청혈증 환자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지하단체의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청혈자들의 지하단체인 그것은 이미 반사회적 단체로 규정되어 있으며 조직원 전원이 국제적으로 수배 상태라고 한다. 혜경은 청혈증과 관계된 주요 위험인물이라는 것이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아는 혜경은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공부밖에 모르고 연구밖에 모르고 자기밖에 모르던 사람이었다. 무엇이 그녀를 변화시켰을지 모르지만 내가 아는 그녀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보건 경찰 앞에서 웃음을 참느라 꽤 고생했다. 그들이 헛짚은 게 확실했다. 지하단체라니, 내가 아는 한, 그녀는 그런 건 개가 물어가게 내버려 둘 위인이었다. 나한테 알고 있는 걸 다 불라고 했지만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며칠 동안 실랑이한 끝에 변호사가 오고 나서야 간신히 풀려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물 한잔 들이키고서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 지급정지 되기 전에 현금부터 찾아둬야 한다. 내 차로 움직이면 바로 잡힐 텐데, 다른 차를 구할 방법이 없을까. 렌터카나 공유 차량 같은 건 쉽게 꼬리를 밟힐 거다. 오늘 내일은 어찌 되겠지. 그들이 그렇게 빠릿빠릿하게 움직일 리 없으니까. 빨라야 다음 주나 돼야 차량 수배가 떨어질 거야. 일주일 동안은 타고 다니고, 다음은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자.

  은연중에 그녀를 믿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모순되게도 일주일이 잠복기라는 말도 믿었던 거 같다. 하지만 그녀도, 세상도 틀렸다. 나는 일주일이 한참 지난 지금에야 그 저주에 걸리고 말았다. 거울 속 내 모습은 가관, 그 자체였다. 점차 퍼렇게 변해가는 얼굴을 보니 지난여름 냉장고에 넣어둔 식빵에 핀 푸른색 곰팡이들이 생각났다. 내 피에도 내 얼굴에도 내 입술에도 곰팡이가 핀 것 같다. 내 인생에 곰팡이가 핀 건 확실했다. 이제 세상은 나를 도려내 버리려 하겠지. 음식물 쓰레기처럼 냄새나는 것들과 같이 버릴 거야. 국내 굴지의 온라인 쇼핑몰 쇼팡의 마케팅 본부 기획팀장에서 푸른곰팡이 잔뜩 낀 음식물 쓰레기 신세가 되는데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할로윈 분장 같은 끔찍한 얼굴 그대로 다닐 순 없는 노릇이었다. 혜경처럼 두꺼운 화장을 할 수도 없었기에 대신 커다란 마스크를 썼다. 신고는 이미 들어갔을 테니 당장이라도 보건 경찰이 들이닥쳐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옷을 갈아입고 은행으로 가 뭉칫돈을 찾아 가방에 구겨 넣었다. 이제 돈을 쓸 일이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당장 찾을 수 있는 현금은 다 찾았다.

     

  어디로 가지.

     

  차에 올랐지만, 내비게이션에 찍을 곳이 없었다. 누가 이런 나를 반겨 줄까. 지방에 딱히 아는 친척도 없었다. 아니, 있다손 치더라도 이런 상태의 나한테 어서 와라 해줄 리 만무했다. 부모님은 돌아 가신지는 이미 오래고, 하나 있는 동생네는 미국에 있다. 갈 곳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가 문득 안면도에서 펜션을 하는 기영이 떠올랐다.

  기영과는 경영대학원 입학식에서 처음 만났다. 본교 출신이 대부분인 석사과정생 중에 기영은 유일한 타 대학 출신이었다. 첫 학기 대표를 맡았던 나는 낯설어하는 기영을 많이 챙겨주었고, 기영은 그런 배려를 고마워했다. 그럭저럭 잘 다니던 기영은 논문 학기만 남기고, 학교를 그만뒀다. 안면도에서 펜션을 하던 아버지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기영과 5년 전에 우연히 연락이 닿았다. 인터넷으로 마케팅 본부 단합대회 장소를 물색하던 중에 기영의 펜션을 보게 된 것이다. 그 후로 가끔 휴가철이나 한가할 때 신세를 지곤 했다.

  펜션으로 가던 중, 행담도 휴게소에서 잠깐 쉬면서 차가운 커피와 빵 쪼가리로 미처 하지 못한 점심을 대신했다. 손을 닦으려 글로브박스에서 물티슈를 찾다가 못 보던 무언가를 발견했다. 스마트 폰이었다. 그것의 주인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혜경이 놔두고 간 것이 분명하다. 켜보니 텔레그램 외 다른 앱은 깔려있지도 않았다. 텔레그램 주소록에 등록된 사람은 길 잃은 고래한 명뿐이었다. 또 다른 게 있나 하고 살펴보니 녹음 파일이 하나 있었다. 파일의 생성 일자는 혜경이 오피스텔을 찾아온 그 날이었다. 스마트 폰을 차에 연결해 들어 봤다.


  정오씨도 알다시피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청혈증에 대한 연구를 했었잖아. 그래서 알고 싶진 않았지만 많은 걸 알게 되어 버렸어. 예를 들면 지금 청혈증에 걸린 사람들에 대한 처우라든가, 정부의 정책 같은 거 말이야.”


  그날, 내가 잠든 동안 녹음했나 보다. 혜경은 청혈증이 얼마나 심각하게 퍼졌는지 그렇지만 왜 그게 위험하지 않은지 설명했다. 혜경은 지금 전체 인구의 5% 정도 되는 사람들이 청혈증에 걸렸다는, 그러니까 전 세계적으로 2억 남짓 되는 사람들의 피가 파랗게 변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라별로 별도로 격리 수용되어 있는데, 그 수용소의 상황은 상당히 열악하다고 한다.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는 처지라는 거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런 소식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청혈증에 대한 보도는 철저히 통제되고 있었다. 3년 전 처음 발견됐을 때는 그래도 제법 보도가 있었는데 2년쯤 전부터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다. 다만 가끔 정부의 발표를 되뇌는 수준의 보도만 있을 뿐이었다.

  정부의 발표는 요근래 점차 병을 통제해 가는 중이고 감염자는 줄고 있으며 치료제는 곧 개발될 거라는 희망적인 이야기가 전부였다. 혜경은 그것들이 말짱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청혈증은 병이 아니라는 거다. 피가 파랗게 되는 것 외에 그 어떤 증상이나 영향이 없다고 한다. 누군가 그 증상 때문에 죽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오가 기억하는 바로는, 청혈증 출현 초기에 아이의 피를 먹으면 청혈증이 낫는다는 괴소문이 퍼져 아이 몇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피 한 방울 남지 않은 아이들의 시체가 발견되고 사람들은 분노와 공포에 떨었다.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고서야 그 추악한 일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피를 먹은 사람들은 그래도 죽진 않았지만, 그 피를 수혈받았던 사람들은 어처구니없이 죽고 말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피가 파랗게 됐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했다. 어떻게 해서든 다시 빨간 피로 돌아가려 했다. 빨간 피를 자신의 몸에 넣어 다시 피를 빨갛게 만들고 싶었던 그들은 오히려 더 차가워진 피를 가진 괴물이 되고 말았다. 그 사건 때문에 피가 파래진 사람들을 향한 시선에 공포와 혐오가 스며들게 되었다.

  청혈증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병의 증상 악화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만든 상황 때문에 죽어 나갔다. 혜경은 어떤 나라에서는 군대가 피가 파란 사람들을 모두 몰살시키는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들을 격리시켜 관리할 능력이 없었던 아시아의 어느 나라에선 수만 명에 달하는 그 사람들을 죽이고 파묻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용없는 것이, 다음 날 다시 피가 파란 사람들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학살 명령을 내렸던 지도자의 피가 변했다는 것이다.


  “피가 파란 사람들이 처음 출현한 1년 동안 세계 곳곳은 그야말로 피의 색깔과는 무관하게 미쳐갔어. 청혈증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는 실험실에서 실험 동물에게 그것이 재연되어야 했어. 그런데 무슨 방법을 써도 실험동물의 피는 전혀 파랗게 변하지 않는 거야. 실험체를 확보하지 못한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청혈증이 걸린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어. 청혈증을 치료하기 위한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서 그들을 희생양 삼은 거야. 이건 전 세계 모든 연구기관이 마찬가지였어. 피가 빨간 사람들로 이루어진 연구원들은 점차 그 실험체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기 시작했어. 그들에게 연민이나 동정을 가지면 연구는 끝장이었거든. 정부와 회사는 끊임없이 실험체를 공급해줬고, 덕분에 많은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었어. 당연히 이런 사실은 철저히 통제됐지. 내가 집을 나와야 했던 것도 연구소에서 제공한 기숙사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야.”


  혜경은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 알아낸 중요한 사실을 말해주었다. 지구상의 전체 인간 중에 청혈증 발현 가능 유전자를 가진 인구는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그 발현이 지금 일어난 이유는 그것이 어떤 외부 자극에 의해 스위치가 켜졌기 때문인데, 그 외부 자극이 무엇인지 아직 추측만 무성할 뿐 명확히 밝혀지진 않았다.


  “이 단체에서는 내가 그 유전자의 발현을 앞당길 방법을 찾아내길 원해. 이들이 원하는 건 트리플 B, Boom of Blue Blood, 청혈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을 말하는 거야. 그걸 통해 한꺼번에 인구의 절반이 파란 피로 바꿀 수 있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거지. 인류 전체의 절반가량의 피가 파랗게 변하는 거야. 그렇게 되면 그들은 더 이상 괴물이 아닌 거지. 절반을 격리할 수는 없잖아. 어쩌면 이건 인간 해방의 신호탄일지도 몰라. 어차피 인류의 절반 정도가 청혈자가 될 운명이라면 전 세계의 모든 파란 피들이 봉기해서 파란 피의 인류를 다시 세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내가 그 방법을 찾아보려고 해.

  사실 정오씨 유전자도 검사해 봤어. 내가 가져온 물건 속에서 정오씨 머리카락 정도는 쉽게 구할 수 있었거든. 그리고 정오씨에게 발현 유전자가 있다는 걸 확인했어. 그래서 이 메시지를 남겨둔 거야. 확실한 건 청혈자들은 이제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할 거라는 거야. 피가 빨간 이들은 우리를 인간으로 보지 않을 거야.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아마 그 날이 내일이거나, 다음 달이거나, 내년이지는 않을 거야. 많은 사람이 죽고, 죽고, 또 죽은 후에야 간신히 알아차리겠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자신들이 악마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걸 말이야.

  유전자판별법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상부에 보고했어. 정부에서도 아마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 하지만 누구도 이 유전자검사법을 적용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어. 인류의 반이라고, . 자신의 유전자가 파란 피로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어? 이 방법은 절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 거야. 파란 피의 인간이 세상에서 모두 없어진다 하더라도 말이야.”

오오, 닌겐은 얼마나 시각적 정보에 경도되는가아~

주제 _ 선정자 : 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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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차 창작입니다.
  • 기본 설정은 영화 <미스터 홈즈>와 영드 <BBC SHERLOCK> 그리고 아서 코난 도일 경의 <셜록 홈즈>에서 따왔습니다. 스포일러가 많군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스킵해주십시오 ^^;

창작자님이 직접 스피드웨건을 해주셨넹 감사해요ㅎ 미스터 홈즈라는 영화에 간달프가 홈즈로 나왔군요. 간달프 얼굴을 대입해서 다시 좀 읽어보니까, 확실히 얼굴을 안 떠올리고 읽었을 때가 더 재미있었어요.
혹시 팬픽 읽어보셨어요? 오래 전에 동방신기 멤버 이름을 빌려와서 쓴 팬픽을 엄청 재밌게 읽은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저는 동방신기가 뭐하는 양반들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팬픽이란 장르 개념도 모르고 읽었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똑같은 이름들이 계속해서 다른 작품들에 또 나오고 또 나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캐릭터가 ... 더 보기
창작자님이 직접 스피드웨건을 해주셨넹 감사해요ㅎ 미스터 홈즈라는 영화에 간달프가 홈즈로 나왔군요. 간달프 얼굴을 대입해서 다시 좀 읽어보니까, 확실히 얼굴을 안 떠올리고 읽었을 때가 더 재미있었어요.
혹시 팬픽 읽어보셨어요? 오래 전에 동방신기 멤버 이름을 빌려와서 쓴 팬픽을 엄청 재밌게 읽은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저는 동방신기가 뭐하는 양반들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팬픽이란 장르 개념도 모르고 읽었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똑같은 이름들이 계속해서 다른 작품들에 또 나오고 또 나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캐릭터가 다 실존인물...이름이 나올 때마다 실제 동방신기 멤버들의 얼굴이 떠올라서 미칠 거 같은.. (내 머릿속의 앤디가 이 앤디가 아닌데!) 머릿속에 실제 얼굴이 떠오르려고 할 때마다 고개를 마구 휘저어서 이미지를 쫓아버리고 다시 읽곤 했어요.
2차창작 장르로 평가하라면 셜로키언들이 나서줘야겠지만, 그냥 일반 창작물 독서로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었어요. 감사!

원작은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입니다.
제가 끌어 온 설정 중에 "왓슨 죽고 나서 홈즈가 30년 더 사는 것"은 "미스터 홈즈"라는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영국에서 2015년에 개봉했고 한국에는 지난 주에 개봉했어요 >ㅅ<
http://www.imdb.com/title/tt3168230/
근데 이 영화도 원작 소설은 따로 있어요 ㅋㅋ
http://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4078903&memberNo=19935397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당 (--)(__)

재미있게 읽었어요. 내용이 간명하게 잘 들어오고 감정도 자연스럽게 전달되네요.
근데 원래 왓슨이 먼저 죽고 홈즈가 30년을 더 사는 건가요? 제가 소설은 봤는데 드라마를 거의 못 봐서...도와줘요 스피드웨건!

안녕하세요? 헤베입니다.

조각글은 에서 시작한 문학 소모임입니다.
[매주 주제를 선정하여 최소 A4용지 1장 이상의 글을 쓰는 모임]입니다.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는 인원은 10명이며, 온라인상을 통해(네이버 카페+카톡 등 SNS메신저) 서로의 글을 보고 합평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주 주제를 소개하는 글에는 분이시라면 누구나 [조각글] 말머리를 달고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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