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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너 때문에 내가 못 죽은 거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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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조회 680회 댓글 0건 작성일 20-12-13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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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링크: https://redtea.kr/?b=3&n=11076
2화 링크: https://redtea.kr/?b=3&n=11082
3화 링크: https://redtea.kr/?b=3&n=11096
4화 링크: https://redtea.kr/?b=3&n=11103
5화 링크: https://redtea.kr/?b=3&n=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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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리자이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초저녁이었습니다. 그 전까지와는 달리 리자이나에서는 서로 다른 숙소에 묵었기 때문에 간단히 저녁을 사 먹은 뒤 다음날 아침에 애슐리네 숙소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애슐리 숙소는 YWCA였고 제 숙소는 그곳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YMCA였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시간에 맞추어 YWCA 앞으로 갔는데 애슐리가 없었습니다. 요즘같으면 스마트폰으로 바로 연락했겠지만 당시는 그런 게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한 30분 정도를 기다려도 애슐리가 나오지 않아, 입구에 있던 직원에게 혹시 이러이러하게 생긴 애슐리라는 사람이 나오면 바로 옆 건물에 있는 카페로 오라고 전해달라고 부탁을 한 뒤 카페로 갔습니다.

카페는 아침이라 그런지 한산했습니다. 커피를 한 잔 시켜서 마시려던 찰나 카페 한쪽에 놓인 컴퓨터가 보였습니다. 1 캐나다 달러짜리 동전을 넣으면 10분간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였습니다. 캐나다에 온 후로 그때까지 한 번도 컴퓨터를 못 썼었기 때문에 메일을 좀 확인해야겠다 싶어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학교 메일에 접속해서 예전 것부터 하나씩 메일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성적 정정 기간 종료 안내, 2학기 수강신청 기간 안내 등 학교에서 보낸 메일들을 심드렁하니 넘기던 중이었습니다.

"선배, 캐나다 잘 도착했어요? 행복한 여행 되길 빌어요 ^^ 건강해요! 희수."

갑자기 희수가 보낸 메일이 나타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날짜를 보니 제가 캐나다에 도착한 날에 보낸 메일이었습니다. 다음 버튼을 계속 누르자 학교에서 보낸 공지들이 지나가다가 다시 희수가 보낸 두 번째 메일이 나타났습니다. 지난 일요일, 위니펙에서 밤새 애슐리 병간호를 하던 날에 온 메일이었습니다.

"선배, 캐나다 여행 어때요? 토론토에 계속 있어요? 아니면 다른 도시로 이동했으려나? 퀘벡 쪽? 나는 내일이면 계절학기 시작해요. 혹시 메일 보면 답장 줘요 ^^ 희수."

머리가 점점 복잡해져 갔습니다. 다른 메일 몇 개가 지나간 후 또다시 희수가 보낸 메일이 나타났습니다. 제가 메일을 확인하던 바로 그날 온 메일이었습니다.

"선배, 어떻게 지내요? 여긴 지금 저녁인데 거긴 아침이겠다. 내 생각 나요? ㅋㅋ 장난이에요. 혹시 까먹었을까봐 주소도 밑에 적어놨으니까 엽서 꼭 보내줘요 ^^ 아니면 계절학기 기간중에는 학교 학과사무실로 보내줘도 돼요. 여행 잘 하고 건강히 지내요 ㅎ 희수."

뭐라고 답장을 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뭐라고 해야 할 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딱히 희수가 고백을 한 것도 아니고 애슐리도 저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한 것은 없고 저도 어느 쪽으로든 말이나 행동을 진행한 것이 없으니 참 난감했습니다. 뭐라 쓸 말이 떠오르지 않아 한참동안 답장 버튼 위에 마우스를 올려만 놓은 채로 희수가 보낸 메일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습니다.

"미안! 분명 알람 해 놓고 잤는데 아침에 못 들었나봐. 많이 기다렸지?"

한참 생각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애슐리 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랐습니다. 화들짝 메일 창을 닫고 뒤를 돌아보니 애슐리가 미안한 얼굴로 서 있었습니다.

"어? 아니, 아니, 별로 안 기다렸어. 와서 커피 마시고 간만에 인터넷 하고 있었어."
"미안해. 분명 알람 맞춰놨었는데 못 들었어..."
"늦을 수도 있지. 나도 약속 늦을 때 많은데 뭐."

대답을 하면서도 혹시 애슐리가 메일 창을 봤을까 신경이 엄청 쓰였는데 다행히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애슐리는 그저 늦어서 미안해하고만 있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안심을 하면서 분위기를 조금 바꿔보려고 여행 일정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오늘은 어디부터 갈까?"
"아! 컴퓨터 하고 있어서 마침 잘 됐다. 이 사이트 한번 들어가볼래?"
"무슨 사이트야?"
"경찰 박물관 홈페이지야. 7, 8월에만 가끔 기마 경찰 행진을 한다길래 일정 확인해보려고."

애슐리가 내민 사이트 주소를 입력하자 화면에 RCMP Centennial Museum (왕립 캐나다 기마 경찰 100주년 기념 박물관) 홈페이지가 나왔습니다. 애슐리가 뭔가를 찾아보더니 밝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딱 오늘이다! 이따 저녁때 행진 한다고 하니까 오전에는 자연사 박물관 갔다가 오후에 여기로 가자."

애슐리가 워낙에 꼼꼼한 성격이어서 여행 일정을 잘 짰기 때문에 그날도 애슐리 말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카페에서 간단히 늦은 아침을 먹은 뒤 자연사 박물관으로 출발하려는데 애슐리가 말했습니다.

"경찰 행진 보려면 늦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데, 막상 재미없으면 어떡하지? 가지 말까?"
"아 그래?"
"음... 아니다, 어디서 들었는데 여행할 때에는 나중에 가지 말 걸 그랬다 라며 후회하는 한이 있더라도 다 가 보는 게 안 가보고 안 후회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더라. 여기도 가 보자. 오늘 아니면 평생 못 볼 수도 있잖아? 하하."

카페를 떠나 도착한 자연사 박물관에는 공룡 화석이 많았습니다. 티라노사우르스 등의 공룡 화석을 실물로 보니 사진으로 볼 때와는 느낌이 정말 달라, 엄청나다는 말 밖에는 딱히 뭐라 표현할 말이 없었습니다. 화석 말고 캐나다 야생 동물들의 박제도 많이 전시되어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구경을 하던 중 애슐리가 넋두리처럼 말을 꺼냈습니다.

"생명과학과 지원할 때에는 이런 화석이나 살아있는 큰 동물도 자주 보게 될 줄 알았는데 막상 전공 들어가니까 매일 DNA, RNA, 단백질같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것만 다루더라. 가끔 허무해."

저도 평소에 하던 생각이었습니다.

"나도 그래. 계속 쪼개고 들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생명이라는 게 사라지는 느낌이야."
"너도 그렇구나! 하하. 그래도 지난 학기 생화학 조별과제는 꽤 재미있었어. 수업은 어려웠지만. 다들 잘 지내고 있으려나?"

생화학은 지난 학기에 저와 애슐리가 같이 들었던 수업이었습니다. 4인 1조짜리 조별과제가 중간에 한 번, 기말에 한 번 있었는데 기말 조별과제에서 같은 조를 하면서 애슐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다들 잘 있을걸? 정규는 방학동안 랩에서 연구참여 한다고 했고 수경이는 인턴 한다고 하더라."
"다들 멋지게 사네. 나는 이제 홍콩 돌아가서 두 학기만 더 다니면 졸업이야."
"어? 벌써? 너 2학년 아니야?"
"홍콩은 대학교가 3년제거든."
"와, 내년이면 사회인이겠네."

외국인이다 보니 서로 친구처럼 말했지만 사실 학년은 같아도 저는 제대 후 복학한 것이었어서 애슐리가 저보다 4살인가 어렸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도 한참 학생으로 지내야 하는데 애슐리는 내년이면 사회인이 된다는 생각을 하니 거리감이 느껴지고 살짝 제가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나오니 앞에 넓은 호수와 공원이 있었습니다. 잠시 나무 그늘에 있는 벤치에 앉아 호수를 보며 쉬었습니다. 애슐리와 저는 사람 반 명 정도만큼 떨어져 앉아 있었는데 그 거리가 왠지 크게 느껴졌습니다. 여행이 끝나면 앞으로는 보기 힘들 거라는 생각, 애슐리는 곧 졸업인데 나는 계속 학생이라는 생각 등이 다 엉켜서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지금 이 거리가 내가 노력한다고 좁힐 수 있는 거리일까?

복잡한 마음을 안은 채 다시 시내로 돌아가 늦은 점심을 먹은 뒤 시내버스를 타고 경찰 박물관으로 갔습니다. 경찰 박물관에서 구경을 하다가 행사가 곧 시작된다는 안내방송을 듣고 밖으로 나가니 이미 사람들이 꽤 모여 있었습니다. 연병장 한쪽에 마련된 관객석에 앉아 행사를 기다렸습니다.

이름은 Sunset Ceremony (일몰 행사) 였지만 5시경에 시작해서 초반부에는 날이 환했습니다. 악대 연주, 말타기 시범 등 여러 행사가 이어지다가 해가 질 때 쯤이 되자 붉은 옷을 입은 경찰 여럿이 말을 타고 나와 연병장을 꽉 채웠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관객도 더 많아져서 원래는 적당히 떨어져 앉아 있던 애슐리와 제가 어쩔 수 없이 거의 붙어 앉게 되었습니다. 좋은 게 아니라 마음이 불편했고 애슐리도 비슷한 눈치였습니다.

그렇게 보는 둥 마는 둥 했던 마지막 행사가 끝난 후 버스를 타고 숙소 쪽 시내로 가는 내내 둘 다 서로 딱히 말이 없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속이 복잡했고, 한편으로는 애슐리가 왜 말이 없는지도 신경쓰였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YWCA 쪽으로 함께 걸어가면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입을 열려던 순간 애슐리가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희수는 어떻게 지내?"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습니다.

"어? 어? 너 희수 알아?"
"응. 생화학 중간고사 조모임때 같은 조였어."
"아 그랬구나. 희수 계절학기 듣는다고 했었어."

다행히도 아까 낮에서처럼 교환학생 때 알고 지내던 친구들 소식을 궁금해하는 것인 것 같아 한숨 돌리고 대답했는데 애슐리가 다음 말을 꺼냈습니다.

"희수가 너 좋아하지?"

순간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중간고사 조 사람들끼리 밥 먹던 날이었는데 다른 애가 희수한테 그러더라고. 무슨무슨 선배가 그렇게 좋으면 빙빙 겉돌지 말고 가서 말을 하라고. 이름은 들었어도 누구인지는 몰랐는데 기말고사 조모임에서 너랑 같은 조 되고서 아 얘였구나 했어."

애슐리가 잠시 조용히 걷다가 다시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부러 보려던 건 아닌데, 희수가 너한테 보낸 메일 봤어. 희수가 정말 너를 많이 좋아하는구나 싶더라."

뭐라 말해야 할 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알 수 없었던 건 애슐리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였습니다.

"아 어... 나도 아까 그 메일 처음 봤어."

당황하니 쓸데없는 말만 튀어나와, 말을 하면서도 동시에 내가 왜 이러나 싶어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애슐리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오늘 하루종일 생각이 복잡했어. 그게, 그게... 나 너 좋아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말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답할 말이 준비되어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애슐리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여행 끝나면 넌 한국 가서 다시 대학 생활 할 텐데 거기에는 네 친구들도 많이 있고, 널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그러니 그게... 아니, 아니, 어쨌든 앞으로 우리가 다시 만나긴 힘들겠지...? 너 마음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만약에 너도 나를 좋아해서 우리가 사귀게 된다고 해도 잘 되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 답이 안 보여서 아예 말 안 하려고 했었는데, 좋아한다는 말조차 안 하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것 같아서 말한거야. 아! 속 시원하다. 한국말 배울 때 시원하다는 게 언제 쓰는 말인지 감이 안 왔었는데 이럴 때 쓰는 거구나."

하하, 하며 애슐리가 힘없이 웃었습니다. 둘 다 말 없이 조금 더 걷다 보니 어느새 YWCA 앞이었습니다.

"나 들어갈게. 내일 봐."

애슐리가 인사하고 등을 돌려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애슐리를 불렀습니다.

"야 잠깐만!"

닫히던 문 사이로 놀란 얼굴로 저를 돌아보는 애슐리가 보였습니다.

"좀 걷자. 잠깐 얘기좀 더 해."

되돌아 나온 애슐리와 함께 큰길가를 묵묵히 걸었습니다. 어느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널 즈음에야 제 입에서 다음 말이 떨어졌습니다.

"나도 너 좋아해."

땅을 보며 걷던 애슐리가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저를 쳐다봤습니다.

"나도 아까 너가 했던 말하고 비슷한 고민 많이 했어. 난 너가 좋은데, 하지만 만약 사귀게 된들 그 후엔 어쩌지 하는 생각. 일 년에 한 번 보기도 힘들텐데, 전화도 힘들고 이메일로밖에 연락 못 할텐데, 사귀는 상태에서 멀리 떨어져있게 되면 정말 외로울텐데. 그래서인지 어제는 차라리 내가 고백을 하고 너한테 차이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도 들었어. 그리고 너는 이제 곧 졸업하고 회사 다니게 될 텐데 나는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 학생일거라는 생각을 하니까 왠지 내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하더라."
"..."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어쨌든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건 변하지 않더라고. 나 진지해. 여행 기분에 들뜬 것 아니야.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를 깊이 알게 되었고, 너를 가까이서 보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너를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고, 내가 너를 분명 좋아하고 있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어서 말하는거야. 힘든 일 있겠지. 아니, 힘든 일이 많겠지. 어쩌면 사람이 아니라 이메일하고 연애하는 기분이 들 수도 있겠지. 사귄다고는 하지만 남들 다 하는 데이트 한 번도 하기 어렵겠지. 다 생각해봤어. 그래도 너와 사귀기 위해 그런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치르기로 했어. 그런 대가보다 너가 더 소중하니까."

말없이 듣고만 있던 애슐리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그랬다가 결국 잘 안 되면? 서로 힘들어하다가 결국 헤어지게 되면 어떡해? 안 사귀느니만 못하게 되면?"
"어쩌면 그렇게 헤어지게 될 수도 있겠지."

제가 확신과 희망의 말을 할 거라고 생각했었는지, 애슐리가 놀란 얼굴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어쩌면 정말로 그렇게 헤어지게 될 수도 있겠지. 미래는 모르는 거니까. 하지만 어쨌든 나는 우리가 잘 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거야. 할 수 있는 건 다 할거야. 만약에 헤어지게 된다면 그 때는 모든 노력을 다 해본 후가 될거야."
"그래도... 그래도 만약에 결국 헤어지게 되면 그때 가서는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 넌 어떨 것 같아?"
"누가 그러던데? 나중에 후회하는 한이 있더라도 시작하는 것이 후회하지 않기 위해 시작조차 안 하는 것보다 나은 경우가 있다고."

아침에 자기가 했던 말이 생각났는지 애슐리가 푸핫, 하고 밝게 웃었습니다. 그 웃음소리 덕에 심각했던 분위기도 한결 밝아졌습니다. 계속 걷고 있는데 애슐리가 말했습니다.

"이럴거야?"
"응?"
"여자친구랑 밤길 걸으면서 손도 안 잡아주고 이렇게 떨어져서 걸을거야?"

그 말을 듣고 손을 내밀자 애슐리가 제 손을 잡았습니다. 어정쩡하게 떨어져 있던 둘 사이의 거리도 사라졌습니다. 바로 옆에서 애슐리 얼굴을 바라보자 애슐리도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서로를 보고 있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크게 웃었습니다. 여행 11일째, 사귄지 1일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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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밴쿠버까지 가야 하는데 이런저런 일로 많이 늦어졌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카테고리는 창작입니다. 마지막 줄... ㅎㅎㅎ

1타~ 잘보고 있습니다

주제 _ 선정자 : 지환
두 명이서 어디론가 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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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 맞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고.

선배가 저 사람에게 휘적휘적 걸어가며 건성으로 말했다. 나는 선배를 제지하며 목록을 다시 확인했다. 다행히 저 사람이 맞았다. 억울한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죽는 것도 억울한데 억울하게 죽는 건 얼마나 더 억울한 일인가. 다행히 저 사람이 맞다. 뭐가 좋을까. 그래. 오늘은 날도 춥고 도로도 얼고 했으니까, 교통사고나 실족사 정도가 좋겠군. 하지만 실족사하기에는 너무 건강한 느낌이지? 내 원칙에 맞지 않아. 역시 교통사고가 좋겠어. 선배는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장치를 꺼내다 돌연 몸을 웅크리며 신음했다.

아야. 아, 나 죽겠다.
나는 한심한 눈으로 선배를 보았다. 아니 그거 이제 익숙해 질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선배는 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했다. 어디 니가 내 짬 되도 그런 말 하나 보자. 이게 익숙해 질 것 같지? 나도 너만할 때는 금방 익숙해질 줄 알았다 임마. 아야. 아이고 나 죽겠네.
더 아파요?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그냥 딱 옛날만큼 아파. 그런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이렇게 아픈 건 참 짜증나는 일이라고. 고통은 쉽게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니까. 억울함 같은 거지. 빨리 처리하고 진통제나 빨자. 마침 저기 차도 온다. 덤프트럭이잖아. 이거면 확실하지.

선배는 좋은 자리에 앉아 장치를 가동했다. 덤프트럭은 제 갈 길을 갔고, 저 사람도도 제 갈 길을 갔다. 원래 각자의 갈 길로 갔다면 서로 만날 일이 없었을 덤프트럭과 그가 도로 한가운데서 마주쳤다. 당연한 말이지만 덤프트럭이 승리했다. 제동력을 잃은 덤프트럭은 그의 위를 지나 교차로의 전봇대에 부딪혔다. 빙판 위의 스키드 자국을 따라 원래 저 사람이었던 여러 가지가 놓여 있었다.

이거 뭐, 냉동고 바닥에 눌러 붙은 민치까스 같은데. 선배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이야기했다. 나는 그런 선배의 위악이 싫었다. 죽음을 다루는 일은 신중하고 엄숙해야 한다. 나는 저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선배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거 알아? 추운 날에는 고양이들이 자꾸 세워 둔 자동차 바퀴에 몸을 대고 자더라고. 엔진의 잔열이 그렇게 따듯한가. 아무튼. 중학생 때였나. 아빠가 또 엄마를 패고 화를 풀러 나가더군. 트럭에 시동을 걸고, 1단을 넣자마자, 팡. 바퀴에 깔린 고양이가 풍선처럼 터져버렸지 뭐야. 아빠 가지 마세요 하고 말리러 나간 내 얼굴로 피가 핑 튀었단 말이지. 젠장. 그날도 다를 건 없었어. 또 술에 진탕 취해 오더니 날 두드려 팼지. 개새끼. 엿이나 먹으라는 심정으로 바닥에 햄처럼 으깨진 고양이 시체를 주워다가 손질해 아빠 술안주로 내드렸는데. 아빠, 어제 요리책에서 본 민치까스에요. 내가 이렇게 요리도 잘 해주니 나를 때리지 마세요, 하면서. 잘도 처먹더라고. 그리고 또 나를 때렸어. 요리책 볼 시간에 공부나 하라고. 아, 대체 나는 왜 그런 재수 없는 집구석에서 태어나서.

선배의 집 이야기는 언제나 나를 찜찜하게 했다. 내가 잘못한 건 없지만 내가 뭔가 잘못한 느낌이었다. 내 아버지는 트럭 운전사도 아니었고 나를 때린 적도 없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억울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래서 지금도 덜 억울한 건가. 선배는 일을 서두르자고 했다. 나 원. 쓸데없는 잡담으로 시간을 낭비한 것은 내가 아닌 선배다.

그래요. 치우죠.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선배.
오냐. 너도 수고 많았다. 기억하마.
선배는 저 사람의 으깨진 시체로 가 코를 박았다. 그러면 영혼의 일부를 좀 받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쓰읍, 하. 죽인다니까. 이제 이 짓도 안녕이로군. 어라. 야. 이 새끼 냄새가 왜 이래. 야. 명부 다시 확인해봐.

나는 명부를 다시 확인한다. 분명히 저 사람이 오늘 죽을 사람이었다. 사무실에 전화를 한다. 네, 지역 과잉 인원 처리반입니다. 아가씨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오늘 처리한 영혼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그녀는 뭔가를 소리나게 뒤적거렸다. 자신의 귀찮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리라. 한참을 뒤적거리고 그녀는 이야기했다. 아. 전산 오류네요. 오늘 그 동네 과잉 인구 지역 풀렸는데.

아니 어쩌라고요. 일은 이미 치뤘는데.
괜찮아요. 아직 그 동네에 처리 인원 여유 좀 남아 있어요. 대량 살해는 아니죠?
네, 일단은 한 명이요.
에이, 그거 어차피 근무평점에 들어가지도 않아요. 영혼 수거 할당량이나 제대로 체크하시고 퇴근하세요. 아, 사자 훈련소로 인계하는 거 잊지 마시구요.

선배는 내게 차가운 눈초리를 보냈다. 마지막까지 아주 잘 한다 임마. 나는 조금 억울했다. 내 잘못이 아니잖은가. 전산 오류라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말 없이 가만 있을 선배는 아니었다. 야, 내가 선배 모시던 시절에는 전자 명부 이런 것도 없었어. 아침에 명단 확인하고 죽일 놈들 달달 외우는 걸로 하루를 시작했구만. 하여간 요즘 것들은 빠져가지고. 그나저나 이거 어쩌냐?
  선배는 시체에 코를 박고 영혼을 빠는 내게 말했다. 쓰읍, 하. 고통이 천천히 빠져나간다. 매일 영혼을 조금씩 마시지 못하면 온 몸이 조금씩 저린다. 저승사자의 천형이다. 사자의 영혼이 유일한 진통제다.

어쩌긴 뭘 어째요. 다른 방법 있습니까. 훈련소 보내야지.

사자의 실수로 원혼이 된 자는 사자 훈련소로 징집된다. 죽는 것도 억울한 일이고, 누군가의 실수로 죽는 것도 억울한 일이겠지만, 인생이란 삶이란 죽음이란 원래 억울한 일이다. 그렇게 억울하게 죽은 자는 또 한 번의 군 생활 비슷한 것을 해야 하는 건 조금 더 억울한 일이겠지만 역시 할 수 없는 일이다. 원한이 강한 자는 바로 환생시킬 수 없다나 뭐라나. 생각해보면 나 또한 어느 저승사자의 실수로 억울하게 죽었지만, 딱히 세상에 원한이 있지는 않았다. 살아있는 동안 나는 내가 죽이고 싶은 대여섯 명의 배때기에 칼을 쑤셔 넣는 데 성공했으니까. 아니, 일곱 명이었나. 그 시절이 좋았지. 이런 이상한 염력 장치 같은 것보다는 역시 직접 손으로 칼날을 밀어 넣는 쪽이 좋다. 죽인 다음에 죽은 이유를 말해주는 것 보다는 죽기 전에 죽는 이유를 말해주는 쪽이 좋은 것처럼 말이다. 이미 죽은 사람에게, ‘당신은 우연히 과잉 인구 지역으로 결정된 동네를 지나쳤습니다’라고 말하는 건 역시 너무 우스꽝스런 일이 아닌가. 그보다는 ‘당신의 배에 칼을 집어넣어야 내가 오늘 밤에 제대로 발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가 훨씬 합리적이다. 그러는 동안 으깨진 시체에서 나온 영혼이 천천히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아무튼, 그동안 고생 많았다. 나는 이제 할당량 채웠으니까 환생이다. 다음 생은 좀 덜 억울하게 태어나서 좀 덜 억울하게 죽기를 바라주라.
그래요. 내가 바란다고 될 건 아니겠지만.
선배의 모습이 천천히 희미해졌다. 나도 할당량을 채울 때 즈음엔 저런 사자가 되어 있을까. 나는 명부를 확인하고 영혼에게 다가가 발랄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당신은 죽게 되었습니다. 여러가지로 복잡한 일인데, 가면서 천천히 설명하도록 하죠.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따지고 싶은 게 있으면 염라대왕한테 가서 따지세요. 당신 같은 걸 만나주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죽는 건 꽤 억울한 일이겠지만 너만 죽는 건 아니니까요. [합평]
이건 뭐... 선이나 악은 이름도 못 내밀 수준의 혼돈이네요. 섬찟하고, 그러면서도 쿨한... 과연 이게 영화로 나온다면 세간의 "허락"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정도로 혼란스럽습니다. (뭐 어차피 예술가는 허락 없이 활동하는 거긴 하죠)

처음에 "저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글쓰기의 정석이라면 불특정한 대상은 가급적 피해야 하거든요. 근데 이 불특정함이 이 글의 혼돈을 더욱 배가하네요. 으... 등골이 서늘해지는 글이네요.

주제 _ 선정자 : 7월
닭!
- 닭, 치킨 뭐든 좋으니 닭에 대한 수필이나 일기를 써주세요.  (수필과 일기만 됩니다,)
- 최대한 의식의 흐름으로 써주세요. (의식의 전개 과정이 보고싶습니다.)
-  수필 형식이면 닭에 대한 연구도 좋습니다. 닭 해부도 좋습니다. 닭이란게 토종닭 장닭 수탉 등이 있더라 그런데 뭐 어쩌고저쩌고 이러셔도 되구요..
- 그냥 마음가는대로 닭 일기 써오세요!

합평 방식
분량은 자유고 합평방식은 자유롭게 댓글에 달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맞춤법 검사기
http://speller.cs.pusan.ac.kr/PnuSpellerISAPI_201504/

합평 받고 싶은 부분


하고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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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을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치킨? 찜닭? 닭살? 물론 그런것도 떠오르지만, 나는 왠지 닭하면 할머니가 떠오른다. 재수를 하겠다고 철 없이 안동으로 내려간 나를 보시기 위해 할머니가 오셨었다. 그 깡촌으로, 그 전 날 엄마가 뭐 먹고 싶냐고 묻기에 아무 생각없이 치킨에 피자라고 대답했었는데 작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정말로 치킨과 피자를 사들고 오신 것이었다.

내 방은 셋이 앉기에도 비좁아서 바깥으로 나와서 먹었는데 참 추웠다. 따뜻할 땐 맛있었는데 식어가니까 점점 맛이 없어졌다. (그때 나는 아 그냥 다른 걸 먹고 싶다고 할 걸 하고 후회했다.) 그래도 차마 들고 오신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꾸역꾸역 먹곤 정말 못 먹는 건 냉장고안에 넣고 데워먹겠다 말씀드렸다. 물론 그 치킨과 피자는 몇 점 먹지도 못하고 그대로 버렸다. 난 참...

할머니는 내가 재수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셨다. 애초에 그다지 뛰어난 공부머리도 아니었고. 얼른 그냥 취업이나 하기를 바라시는 눈치였다. 근데 난 그때까지만 해도 내 자신을 과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을 거라고 환상속에 빠져있었다. 내 고집으로 이루어진 재수결정이었고 도피성으로 떠난 잠적이었기에 할머니의 입장에선 떨떠름하신 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하지만 내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적은 없으셨다. 차라리 대놓고 말씀하시지.

내가 그 곳까지 할머니가 오신 것을 놀라워했던 이유는, 그 때 할머니가 폐암 환자셨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심각한. 뭐라더라 열었다가 손 못대고 그대로 닫았다고 하셨던가. 짧은 여행도 힘겨우셨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께선 본인의 몸 상태보다 아무것도 못하고 허우적 대고 있는 아픈 손가락 같은 둘째 손자가 잘 되는 것이 더 중요하셨던 것이다.

치킨을 먹고 있는 와중에, 할머니가 내 손을 잡고 니가 잘 되야한다 를 몇 번이고 말씀하셨던 할머니의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내 자신이 조금 병신같고 조금 또라이같다고 지금 생각한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그 이후로 할머니가 나에게 이렇다할 말씀을 많이 한 적은 없다. 특히 고시원 생활을 접고 난 이후론 거리도 멀고, 무엇보다 병원 생활을 하시기 시작하시면서 반쯤은 의식이 없는 생활을 하셨던 탓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때 할머니의 니가 잘 되야 한다 라는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점차 엄마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가면서 특히, 내가 커가면서 점점

지금 모습을 보시면 할머니가 좋아하실까?
할머니가 사준 치킨을 다시 한 번 먹고 싶다.
할머니가 요새 아프십니다. 집안 어른들이 강성인 편이라 매번 웃으며 인사하고 고개만 몇 번 숙여보이면 됐던 저로서는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할머니의 움푹 들어간 살자리를 마주하고 있기 머쓱합니다. 그러다보니 자꾸 입원하신 병원에 가는 것도 여러 핑계를 대며 도망치게 되는데 어째야할지 모르겠네요. 그냥 뵙는 시간에는 웃는 양으로 손을 맞잡는다지만 다시 찾아가는 발걸음이 무겁고 또 그러고 있는 자신이 너무 싫은데 맘대로 되질 않아 제 자신이 좀 혐오스럽기도 해요. 도망쳐서는 안될 시점인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결국 또 도망칠까봐 두렵네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외갓집과 외갓집 장손이자.. 이번에 재수하게 된 외조카가 생각이나네요.
애기가 착해서, 합격되면 제일먼저 할아버지께 연락드릴게요! 그랬다고 하는데 아직도 연락이 없다고..
고등학교 무렵부터 일정시기는 성적 관련해서 자격지심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시켜서 오는 자괴감등으로 괴로워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짧은 글이지만 진솔함이 느껴지는 글이었어요..
좋은 추억이나 기억은 오래 남고, 사람은 그런 기억으로 지탱하며 사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영화 집으로 가 떠오르기도 하고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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